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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누록, 왓 쭐라마니의 쁘랑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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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돌탑 혹은 왓 쭐라마니의 쁘랑은 피사누록 지방의 왓 잔(Wat Chan) 구역에 위치합니다. 시기는 기원후 13세기경 롭 부리(Lop Buri) 시대입니다. 기념물은 라테라이트로 만들어졌으며 삼단으로 바닥이 올라와 있습니다. 탑과 바닥은 각 모서리에서 다시 들어오는 모양입니다. 바닥은 모든 사면에서 계단과 닿아 있습니다. 탑은 네 개의 입구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중 세 개는 가짜입니다. 정문만 오직 진짜 입구이며 탑 안의 내실로 이어지고, 세 개의 계단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연대기에 따르면 탐마뜨라이 로까낫(Dhammatrai Lokanat) 왕은 신성한 왕위에 대해 피로감을 느껴 오-카부리(O-khaburi, 혹은 피사누록)의 시 사차나라이(Si Satchanalai)로 떠났고 서품식 이후, 크롭랏(Kroprat) 왕이 이끄는 그의 주변 사람들은 금궤에 든 그의 머리카락을 보관했습니다.그런 후 크롭랏 왕은 법당을 갖게 되고 탐마뜨라이 로카낫 왕의 머리카락을 보관하기 위해 쁘랑을 건립했습니다. 법당은 왓 쭐라마니(Wat Chulamanee)로 후대에 알려졌습니다.

쁘랑은 아유타야 시대에 재건되었습니다. 기원후 1448년에서 1488년까지 아유타야의 왕이던 바롬마뜨라이 로까낫(Barommatrai Lokanat) 왕은 피사누록에 임시 수도를 세웠고, 따이로까랏(Tilokarat) 왕이 지배하던 란나 왕국의 수도이자 북부에 있는 치앙마이의 침략 위협을 보호할 수 있었습니다. 피사누록에 있는 동안 바롬마뜨라이 로까낫 왕은 왓 풀라마니를 재건하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는 사원에서 서품식을 하고 이곳에서 8달을 머물렀습니다. 쁘랑의 스투코 모티프는 이 시기에 재건설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무앙보란은 왓 쭐라마니의 쁘랑을 반절로 크기를 줄여 제작하였습니다.

위치 피사누록, 왓 쭐라마니의 쁘랑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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