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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차분, 시텝의 쁘랑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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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텝은 고대에 가장 큰 도시 중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펫차분 지역의 빠삭(Pa Sak) 강에 위치합니다. 도시는 2,000년 전인 청동기 시대부터 번영했습니다. 기원후 6-7세기에 시 텝은 왕이 다스렸고, 주로 힌두교를 믿었습니다. 그 이후 기원후 8세기부터 히나야나(Hinayana) 및 마하야나(Mahayana) 불교가 주를 이뤘습니다. 고고학적 조사에서 큰 쩨디(사리탑이) 여러 개가 도시 중간과 주변 마을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시텝은 짜오프라야강(Chao Phraya River)의 중부 평야에 있는 나콘빠톰(Nakhon Pathom), 쿠부아(Ku Bua), 라보(Lavo, 혹은 롭부리 Lop Buri) 같은 주변 드바라바티(Dvaravati) 마을과 관계를 이었습니다. 이것은 도시의 탑이 무너지게 된 기원후 11-12세기까지 도시의 번영과 자주권을 유지하도록 도왔습니다. 이 시기동안 롭 부리 왕국은 크메르 제국과 새로운 수교를 맺었고, 주된 종교로 힌두교를 받아들였습니다. 다수의 건축학적 구조가 롭부리와 주변 지역에서 동시에 만들어졌고, 이는 크메르 예술의 막강한 영향력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시 텝에서 쁘랑 야이(Prang Yai)와 쁘랑 송 피-농(Prang Song Phi-Nong)과 같은 크메르식 석제 성소가 도시 중간에 건설되었습니다.

시 텝은 기원후 13세기에 완전히 버려졌고, 차오 프라야 강 유역의 중부 평야 지대와 코랏 고원의 중부 지대를 잇는 통로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바뀌었습니다.
고대 시텝의 존재로 알 수 있는 역사적인 건축물은 시 텝의 한중간에 있는 또 다른 거대한 석제 성소인 쁘랑 시 텝이 있습니다.  성소는 기원후 11세기에 제국에서 번영했던 힌두교의 확고한 세력을 보여줍니다.

건축물과 더불어 크메르 신 조각상도 발견되었습니다. 조각들의 연대는 크메르 왕조가 여전히 번영을 누렸던 프라나컨(Phra Nakhon) 시대인 기원후 6-7세기로 추정됩니다. 크메르의 신성한 조각상의 매우 특징적인 요로소는 페르시아식 높은 모자와 의복을 찾용하고 트리 팡카 자세(Tri Pangka, 한쪽 무릎을 낮추고 반대쪽 엉덩이를 옆으로 기울인 채 머리는 중앙에 맞춰있습니다)로 서 있습니다.
무앙보란의 쁘랑 시 텝은 완전히 장식을 꾸며 단장했습니다. 크기는 펫차분 지방에 있는 본래 쁘랑보다 작습니다.